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는 작은 위로, 몸에 담긴 기억
꾸준히 나이를 먹고 있지만, 여전히 낯선 나의 몸. 나만 그런가요?
들여다볼수록 나만의 이야기가 가득한 몸, 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저는 건강에 누구보다 자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체력도 좋았고, 병원에 가는 일도 거 의 없었죠. 그랬던 제가 30대 초부터 유독 잔병을 앓기 시작했어요. 소음성 난청부터 위염, 식도염, 포도막염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나 부위도 다양했습니다. 잔병에 걸려 회 복하면, 또 다른 잔병에 걸리기를 반복하는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지긋지긋하던 일상이 문득 스친 ‘아팠던 일을 적어보고 싶다’는 이상한 생각 때문에 완 전히 달라졌습니다.
찬찬히 나를 지나간 잔병을 떠올렸습니다. 눈, 코, 입을 지나 어깨, 허리에서 발까지. 그곳에는 아주 사소한 이야기부터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는 사연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내 눈에만 보이는 자그마한 흉터에 담긴 일, 미련한 판단 때문에 몇 배는 아팠던 일, 대학병원에 다니며 마음 졸였던 일까지. 그뿐만 아니라 달리기에서 1등 도장을 받고, 오른쪽 손에 깁스하고 고무줄을 뛰고, 두발자전거를 처음 타게 되었을 때와 같은 어린 시절의 기억들까지 떠올랐습니다.
두서없이 떠오른 그 기억들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었습니다. 부단히 애를 쓰면서 삶을 살아온 한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때로는 성취하는 기쁨을 맛보고, 때로는 잘못된 선 택과 습관으로 절망을 맛본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결과물이었습니다. 살아온 세월의 흐 름만큼 ‘몸’이라는 곳에 이야기가 쌓여 작은 역사가 되고 있었습니다.
「몸에 담긴 기억」은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입니다. 일상에 쫓기느라 몸에서 보내는 신 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경이로운 경험도 잊은 채 살던 제가 다시 마주하게 된 기억 모음집입니다.
그와 동시에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며, 실수를 반복하고, 조금은 좌절하다 다시 희망을 품고 나아가보 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 짓고,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목차
프롤로그 | 몸 사용법 | 외모지상주의 | 식탐과의 전쟁 | 내 머릿속 담배 냄새 마음의 흉터 | 엄지손가락 상처 | 희뿌연 시야 | 피할 수 없는 소음
Death & Rebirth | 에필로그
책 속의 문장
그 이야기들 속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순간의 가치관이 복잡하게 얽힌 나름의 결과물이자,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평가받은 성적표 같기도 했다. 물론 평가에서 만 족스러운 점수를 받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시 그 결과들은 내 삶에 엮어져 또 다른 생각과 생활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영영 바꿀 수 없는 결과가 되어 버리는 것 이 아니라,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되어 곁을 맴돌고 있었다.
-프롤로그, 13p
타인의 기준에 맞추느라 진짜 내 취향을 잃어버린 것만 같아서, 좋아하지 않는 옷을 고 르고 입다 보니 귀찮고 재미없는 일이 된 것만 같아서 못내 아쉽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열심히 꾸며왔던 모습, 커트 머리에 분홍색을 싫어했던 모습, 몸무게 최고점과 최저점 을 찍었던 모습 모두 내게 있다. 그 모습들은 응어리 없이 누군가의 시선에 당당할 수 있는 맷집이 되어주고 있다.
-외모지상주의, 33p
한 발짝 떨어져서 스스로 묻기 시작했다. 손가락의 상처가 아닌 다른 상처는 어떻게 대 해왔는지, 몸의 상처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그리 대했던 건 아닌지. 혹시나 다른 사 람의 상처를 힐난 거리로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닌지... 조그만 상처에서 시작된 생각은 멈출 줄 몰랐다.
- 엄지손가락 상처, 61p
세포 이야기를 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라고 끊임없이 다독이는 그 눈빛에 새까맣던 마음이 녹아내렸다. 이따금 찾아오는 잔병에 불 안해질 때면, 아버지 말을 떠올린다. 포기를 모르고 매일 태어나는 수천억 개의 세포들 과 그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아버지의 기적을 찬찬히 되짚어본다. 이 불안한 마음도 죽어 없어지고, 굳건하고 건강하게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 Death & Rebirth, 10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