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엄마와 살고 있다

황지원

148 X 210mm / 296 page

<책소개>

아빠의 죽음. 그리고 일주일 후, 

5년이라는 사망선고를 받은 엄마와 함께 암 투병을 해나가는 이야기이다. 

슬픔과 눈물로 얼룩진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사소함이 주는 행복을 알고 누구에게나 오는 내일의 기적을 꿈꾼다.

<책 속의 문장>

어쩌면 나는 울어야 할 때 모자람 없이 온전하게 울지 못했다.

얼룩진 마음을 바라보고 잘 지워줬어야 했는데

구깃구깃 접어 보이지 않는 뒷방으로 밀어 넣어 둔 것이다.

그 우울한 마음은 한때 불고 지나가버릴 바람이라 여겨 흔적 없이 사라질 줄 알았지만

여전히 뒷방의 어느 옷 주머니에서 가끔씩 나오는 더러워진 휴지처럼 꺼내어져

아직 나는 그렇게 아프다.

주변의 칼날은 무르고 고름 난 내 몸에 상처를 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나는 일어나야 했다. 충분히 슬퍼할 시간도 사치인 그런 날이 시작된 순간, 

이제 무너진 내 세상을 어떻게든 바로 잡아야 한다. 

누구에게나 예고 없는 슬픔이 찾아온다. 

착하거나 나쁘거나, 혹은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슬픔은 편식이 없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언제나 해야 한다. 

특별한 건 없다. 세상을 탓하기만 하다간 

끝없는 슬픔으로의 추락만이 남는다. 

정신 차려라. 네가 견뎌내야 할 몫이니…

처음 내 상황을 전해 들은 친구들은 

내가 칠흑같이 어두운 늪에 빠져버렸다고 여겼지만

멀리서 보는 삶이 때론 더욱 처절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구경하는 나의 세계는 무너졌음에 

어두웠고, 슬펐고, 괴로운 절망에 빠진 것으로 보였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늪을 걸어 다니며 

단지 왼발을 빼낼 궁리로 너희와 같이 하루를 행복하게, 또 힘들게 살아갈 뿐이다. 

어느 삶에 걱정하나 기쁨 하나가 없을까… 

다를 것 하나 없는 인생에 그저 지금의 우리는 잠들기가 힘들뿐…

절망의 우위를 따지던 내 모습에서는 

결코 어른의 향기를 찾을 수 없듯이 

우린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어른의 배지를 다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어른이 되는 연습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오늘처럼 쓸쓸한 또 하루를 견디며 말이다

어쭙잖은 위로가 상처로 바뀌는 신비한 독약이다. 

노심초사의 기준이 비슷하던 우리는 

불과 몇 개월 만에 이렇게도 달라져있다. 

열등감에서 비롯된 초라한 마음인지, 

저만치 가랑이 찢어도 쫓아가지 못할 부러운 마음인지 

술잔의 술을 가슴 속에 채워 넣어도 

구멍난 독에 물을 들이붓듯 채워지지 않는다. 

결국 사람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뒷방 하나는 억울하다. 

후회된다. 원망한다. 에서 비롯된 내 비틀린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 탓할 누구 하나가 없다. 

술이나 음악이 위로가 되어주지 않는다면…

대화나 여행이 환기가 되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괜찮지 않다는 걸 받아들여야 할 때인지 모른다. 

어떤 이의 위로도 가시 돋친 말로 다가온다면 

혼자만의 방에 들어가 모자람 없이 온전하게 울어봐야 할 것이다. 

그렇게 매일 같이 휴짓조각을 버리다 보면 

아팠던 마음에도 굳은살이 생길지도 모르니 말이다.